그러니까

  1. [연옥님이 보고계셔 78] - 억수씨 (via 원사운드)
  2. [학문을 업으로 택하고자 하는 그대에게] - 은하

『후르츠 바스켓』에 이런 대목이 있다.

시구레: 예를 들면 토오루가 산더미 같은, 그것도 발목까지 쌓여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빨랫감에 둘러싸였다면 어떡할래?

게다가 세탁기가 없어서 한 장 한 장 손으로 빨아야 합니다. 토오루는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정말로 몽땅 세탁할 수 있을까?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 만족할만한 결과를 자신은 제대로 내놓을 수 있을까?”하고 생각하면 할수록 불안해집니다. 하지만 시각은 시시각각 지나고, 자아 과연 토오루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발밑에 있는 것부터 세탁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일지 몰라. 앞날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만 쳐다보면 발밑의 빨래에 발목이 감겨 넘어진다고. ‘지금’이나 ‘오늘’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도 중요해. 그렇게 한 장 한 장 세탁해 나가면 어쩐지 싱거우리만치 간단하게 하늘의 이치가 보일 테니까.

그래도 때때로 불안이 치밀어 오르겠지만 그럴 때에는 잠깐 한숨 돌리는 거야.

-- 타카야 나츠키, 『후르츠 바스켓 8』, 하쿠센샤, 2002. pp. 129-131
(한국어판, 정은(訳), 서울문화사)

나이브한 이야기기는 하지만, 어쨌든 걱정하고 화만 낸다고 뭔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하는게 제일 좋은 해답일 것 같다. 좌절하기 보다는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해 보면, 뭐 목표했던 곳까지는 가지 못해도 다른 길을 발견할 수 있지는 않을까. 어차피 인생 한번 사는 거, 후회는 없게 살아야지. (뭔가 이상한 내용이 산으로 가고 있다….)

2008년은 뭔가 굉장히 희망에 차서 시작했던 것 같은데, 한 해가 끝난 다음에는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 것인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Posted by 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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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블로그를 돌아다니고 있으면, 인간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되는 일이 종종 생기는 것 같다.

3년쯤 전에는 블로그에 대해서 굉장한 환상을 품었었다. 대안 언론, 새로운 소통 수단, 집단 지성, 인간에 대한 희망, 뭐 이런 것들. 지나고 나니, 블로그도 다 사람이 만드는 거더라. 세상 어딜 가도 허풍선이, 난독증, 피해망상, 선동가, 없는 유형의 사람이 없더라. 처음에는 그걸 받아들이기가 왜 그렇게 어려웠던지. 역설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있음으로 해서 오히려 사회가 죽지 않고 유지 될 수 있다는 모순적인 진리를 인정하기가 어찌나 싫었던지.

그런데, 역시 인정할 수 밖에 없더라. 인터넷이나 블로그 같은 것들은 결국 그릇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정보에 접근하기 쉽게, 사람들끼리의 접촉이 쉽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까 하는 것은 전적으로 사람들이 결정하는 것이다.

그때 읽었던 책들이 도킨스의 책이었다. 나는 아직까지 진화에 대해서도, 생물학에 대해서도, 나아가서 (명색이 자연과학도를 칭하면서) 과학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적어도 그와 그 동료들의 책을 통해서 사회와 인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틀을 얻을 수 있었다. 나이브하게 얼기설기 짜여져 있었던 내 어설픈 관념들을 상당부분 부술 수 있었고, 어설픈 희망을 버릴 수 있었으며, 깊은 고민 없이 부정해 왔던 많은 것들의 가치에 대해서 새롭게 눈뜰 수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도킨스도 인간이고, 조금쯤은 비판받을 부분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한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들으면, 도킨스가 조금쯤 기뻐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

나를 변화시킨 책은 대충 꼽아봐도 10권이 넘지만, 그중 단 한권만 꼽아보라면 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꼽을 것이다. 우습지만 모든 것은 적당해야한다는 진리를 가르쳐준 책은, 겉보기에 그 명제와 아무 상관이 없는 이 책이었다.

어설프게 시작한 글이 도킨스 씨에 대한 신앙간증이 되어버렸는데, 아무튼 난 도킨스에게 상당히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요즘 온갖 떡밥이 날아다니는 블로그들을 돌아다니고 있자니 갑자기 2005년에 내가 했던 온갖 삽질들이 떠올랐고, 마침 적절한 글이 올라왔길래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토해본 것이다. 역시 블로그는 적당히 돌아다녀야지, 그냥 공부나 해야겠다.

Posted by 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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