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숭례문 화재에 대해 마지막으로 한번 정리하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이번 사건을 둘러싼 여러 논평들, 그리고 그에 대한 저의 코멘트입니다. 짤막짤막한 꼭지 몇 개를 모아놓은 것이 전부인 글입니다.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것들이
숭례문은 “거기에 있기 때문에” 숭례문이었던 것이죠. 온 국민이 전부 고고미술사라도 전공해서 15세기 초의 목조건축 기술이나 숭례문 공포양식의 공학적인 아름다움을 매일 떠들고 다녀야한다는 것인가요. 항상 거기에 있던 것이 황망히 스러졌을 때 그걸 슬퍼하는 것을 비웃는 것이, 할아버지를 잃은 사람에게 평소에는 연락도 안 하다가 돌아가시니까 슬퍼하는 척 한다고 말하는 것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어차피 조금만 있으면 잊을 거 아니냐
성수대교도 잊고 삼풍백화점도 잊고, 지난달의 이천 화재 참사도 잊듯 숭례문도 잊어버릴 걸, 왜 난리냐고 합니다. 잊는다는 것이 일상에서 사건의 여파를 지워내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 말은 틀리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렇게도 죄스러운 일이었던가요. 일반 대중들이 매일 숭례문 앞에 와서 묵념이라도 하고, 매년 2월 10일에는 숭례문 추도식이라도 할까요. 우리가 어떤 일을 잊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일에서 교훈을 얻고, 잘못된 점을 고치고, 그것을 토대로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는 일일 것입니다. 슬픔을 지고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분명, 감정과 분위기에 휩쓸려서 상황에 대한 반추 없이 분출만 하는 감정이나, 그걸 이용해서 정치적으로 이용해먹는 것은 경계해야 할 사항이지만, 순수한 국민적 슬픔마저 어리석은 짓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은 그대로 또 구역질나는 엘리트의식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더군요. 세상을 냉소적으로 보고 싶으시면 그렇게 보도록 하세요. 하지만 저는 그 말에 동의하지 못하겠더이다.
국보 1호, 국상
개인적으로 이건 진짜 일소에 부칠 일로 생각을 하는 게, 1호 지정 바꾸자고 10년 전부터 막 떠들어대서 곧 번호 체계가 무의미하게 바뀌지 않던가요. 뭐 자기 필요한대로 가져다 붙이는 거야 하루 이틀 보아온 행태가 아니지만, 지금 와서는 전부 국보 1호의 상징성 운운하는 글뿐이니, 그저 어이없어 웃을 뿐입니다. 국상 어쩌구 하는 것도 전부 쇼. 이런 식으로 국민 감정을 이용해먹는 쓸데없는 쇼야말로 비웃음 당해야할 것들입니다.
복원
뉴스 미디어에서는 기사거리 하나 잡았다고 확인도 안 되는 소스를 인용해서 글들을 쏟아내고 있고, 사람들은 그걸 가지고 또 떠들어대면서 복구 불가 어쩌구 하던데, 2년도 안 된 실측도도 남아있다고 하고, 목재를 구하는 게 문제기는 하지만, 복원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 같습니다. 국보를 태워먹도록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우리나라가 부끄러운 것이야 부끄러운 것이고, 오래된 부재들이 다 타버린 것이야 통탄할 일이지만, 복원이 되니 안 되니를 가지고 시끄러울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건 전문가들의 영역이고, 부재가 교체된다고 숭례문이 숭례문이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복원이 안 되는 것은 우리의 상처 입은 자존심이고, 그걸 치유할 방법은 앞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일 테니까요.
책임 소재를 따지는 일은 어리석은가
천만에요. 당연히 따져야하고, 끝까지 추적해야하며, 잘못한 사람의 책임은 묻고, 제도를 고칠 건 고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인터넷에서 보이는 글의 대다수는, 그런 내용이 아니고 그저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을 (그 사람이 누구든) 얽어넣어 어떻게든 한마디 욕이라도 더 해보자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저는 그 부분을 불편해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책임은?
전 일개 시민일 뿐이고, 지금 오가는 말들이 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코멘트 할 수 있는 부분은 그나마 조금 알고 있는 소방서의 진압작전에 대한 것뿐이고, 그것조차 틀릴 가능성이 다대한 것이죠.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번 일이 정치인 한사람의 책임은 아니라는 것, 총체적인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의무소방 2년 굴러먹은 짬밥의 견지에서 본 이번 진압작전

GNU FDL (From Wikimedia Commons)
여러 가지 문제점은 이미 다른 분도 짚어 주셨으니, 저는 거기에 짤막하게 덧붙이기만 하겠습니다. 숭례문의 사진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겉에서만 봐도 다포양식으로 지붕에 부재가 켜켜이 쌓여있는 구조가 보이죠. 지붕 안쪽이 어떠하리란 것은 짐작하기 쉬운 일일테고요. 문화재청은 21시 30분경에, 일부 파괴해도 좋으니 화재를 진압해 달라고 했다고 밝혔습니다. 전통 건축물 화재는, 불이 번지기 전에 진압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일단 불꽃이 밖으로 보이면 진화 불가고, 불을 끈다고 쳐도 전부 헐고 다시 지어야 하죠. 물을 먹은 목재는 부풀어서 뒤틀리고, 겨울철에는 목재에 스며든 물이 얼어서 터지기도 합니다. 불을 꺼도 집은 못쓰게 되고, 그냥 다시 짓는 것이 속 편합니다. 유홍준 청장이 말한, 불난지 10분이 넘으면 진압 불가라는 말이 이 뜻이죠. 어차피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한다는.
그래서, (부재를 재활용이라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니) 화재 시에는 최대한 빨리 화점을 찾아서 분사해 물이 닿는 면적을 줄여야 하고, 복잡한 부재 때문에 소화 용수가 화점에 닿기 어렵기 때문에 밑에서 위로 물을 쏘아 올리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쏘면 물이 흘러서라도 화점에 닿지만, 아래서 위로 쏘면 뭐 그냥 방수하는 시늉만 하는 거랑 다를 바가 없어요. 시골에서 단층건물 화재가 나도 굴절차를 끌고 가는 이유가 이겁니다. 물을 위에서 아래로 쏘기 위해서요.
언론에서 소화 약재라고 부르는 폼(foam)은 발포력 좋은 계면활성제로 화점을 감싸서 산소 유입을 차단하는 물건으로, 유류/화학 화재같은 곳에서 쓰는 것이지 이런 단순 화재에 쓰는 물건이 아니고, 화학 약품이기 때문에, 단순히 수손되는 것보다 훨씬 큰 피해를 초래합니다.

(c) 2008 노컷뉴스
자, 그럼 이번 작전을 찍은 사진을 보시죠. 10일 23시경에 올라온, 진압 초기의 사진입니다. 도대체 제대로 되어있는 부분이 어디 있습니까? 펌프차가 방수포로 밑에서 위로 처마 아래에 물을 쏠 뿐입니다. 그나마도 연기만 나니까 완전 진화 된 것으로 파악해서 진압강도를 줄였다는데, 이건 절대 용서 못합니다. 소방서에서 석 달만 굴러보면 연기 안 난다고 불이 꺼진 게 아니라는 걸 아는데, 뭐라고요? 그러다가 불길이 지붕을 뚫고 치솟으니까 그제서야 굴절차를 펴고 방수를 하느니 폼을 쏘느니 부산을 떱니다. 화재가 지붕을 뚫고 나온 이상, 붕괴 위험 때문에 지붕위에 직접 올라가는 건 꿈도 못 꿀 일이 되어버렸고, 이제는 다 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23시 이후에는 소방서는 물 쏘면서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거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c) 2008 뉴시스
이건, 아마추어의 눈으로 봐도 자명한 작전의 실패입니다. 그리고, 사태를 잘못 파악하여 초기 진화에 실패한 책임자인 진압대장의 책임이지요. 목조 건물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건 변명거리도 안 됩니다. 일본에서 수입해 온 매뉴얼이 널려있고, 진압대장씩이나 하려면, 중앙소방학교에서 두달동안 집중적으로 진압작전등에 대해 교육을 이수해야 합니다. 자신의 일에 대해 누구보다 전문적으로 알아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이걸 몰라서 일을 키웠다는 건, 단순 과실이 아니고 배임에 해당돠는 행위입니다. 저는, 불이 나기 전 시점까지의 관리 소홀이니 책임은 모릅니다. 하지만, 불이 난 시점 이후로 무너지기 까지는, 소방의 잘못이 가장 크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Posted by 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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