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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29 밥과 똥 by 휘연 (4)

밥과 똥

[먼저 읽으세요]

저도 훈련소에서 간부들 도시락 챙겨와서, 훈련병들은 초여름 땡볕에 좁은 교육장 계단에 200명이 우글거리며 맛도 없는 짬밥 먹는데 자기들은 그늘막에 시원한 물까지 아이스박스에 챙겨와서 하하호호 웃으면서 먹고있을 때는 굉장히 짜증났었습니다. 당연히 여기서 분노해봤자 돌아오는 건 나의 불이익일 뿐이라는 현실적인 생각이 저를 가만히 있도록 만들었지만 말이죠. 공용컵에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나는 끓인 물을 받아마시면서—그나마도 부족했지요—적어도 물은 먹을 수 있도록 해 줘야하지 않나 싶기도 했고요.

굳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저도 intherye 님 말씀에 대부분 동의합니다. 여건이 나빠서 훈련장 나가면 변변히 훈련병 식사 편하게 시켜줄 공간도 없어서 좁은 교육장에 우르르 앉아서 먹을 수도 있는 거고, 한여름에 팔팔 끓는 물도 수통 반쯤 넣어 주면서 이걸로 오전 내내 버티라고 할 수도 있는 노릇이고, 한달동안 미지근한 물로 샤워 딱 한번 시켜주면서 그것도 5분 안에 끝나라고 할 수도 있는 겁니다. 하지만 사람인데, 나도 사람인데 병들은(적어도 제가 본 훈련소 조교들은 훈련병들과 별다를바 없는 생활을 했어요) 이렇게 죽도록 고생시키면서 부사관/장교들은 나름 온갖 호사를 누리는걸 보면서 어찌 배알이 꼴리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사실, 군도 군이지만, 좀 넓게 보면 이건 우리사회 전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세상 모든 사안을 전부 민주적으로 처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세상 사람들 모두가 계급 없고 차이 없이 평등하게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하지만 정말 제대로 된 사회라면 적어도 맨 밑 사람이 부족하긴 해도 최소한은 보장받으면서 윗사람들에게 살의를 느끼지 않게 지낼 수 있고, 윗사람들도 알아서 밑 사람들에게 비교될만한 것은 삼가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하는데, 우리나라는 그 "하는 척"에 대해서 굉장히 인색하다고 봐요.

위선이니 면피니 해도, 사람이 이성만 가지고 사는 건 아니기 때문에 거짓으로라도 당장 부대낄 일은 없앨 필요가 있는데, 너무나 당연하게 옆에서 사람들이 목말라하는데 사정 좋은 몇몇이서 자기들끼리 찬물 마시면서 "그럼 어쩌라고, 너희들 다 나눠주면 이 한 병을 누구 코에 붙이냐"라고 지껄여대지요. 찬물까지 바라지도 않고 미지근한 물 한모금 더 주고 자기들도 똑같은 물 마시면, 아니 적어도 좀 숨어서 마시면 뭐라고 하지는 않을텐데 말이죠.

하지만, 전 그게 기본적인 인권 보장의 문제이지 민주화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여기서 저와 intherye 님의 시각이 갈리는 것일텐데, intherye 님이 『카탈로니아 찬가』를 인용하신다면 저는 왜 소련의 붉은 군대가 2차대전을 거치면서 계급 제도를 부활시킬 수밖에 없었는지를 말하겠습니다. 게릴라 의용군의 모럴과 징병된 국민군의 모럴를 동일선상에서 보기란 어렵지 않겠습니까.

한국군에 있어서 기본적인 인권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이 많다는 것과 그것이 제도와 개같은 소위 "전통"에 의해 강제되는(해병대가 순검 제식을 조금 바꾸려다가 해병대 전우회가 발칵 뒤집혔던 것 같이, 말입니다) 건 당연히 바꾸여야 할 악습이지요. 이등병이 상병 잡심부름 안 하고, 윗사람들 눈치 안 보고 부당한 취급을 받았다고 느낄때는 적당한 절차를 밟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하지만, 문자적인 의미에서 사실 그런 규정은 이미 갖추어지고, 또 계속 정비되고 있지 않나요. 결국 그런 제도의 정비를 무력화 시키는 분위기, 즉 시민 의식을 개혁하는 게 중요할텐데, 저는 점진주의적인 입장이라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그걸 한번에 이룰 수는 없고, 또 길게 보았을 때 점점 여건이 개선되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 굳이 여기서 더 무얼 하기보다는 누군가 이런 코스를 막거나 되돌리지 않도록 감시하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요. 또 그걸 굳이 "민주화"라 불러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좀 의문입니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민주화"라고 부를 수 있긴 하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용어의 사용이란 게 사안을 정의해저리는 힘이 있다보니까요.

중언부언이긴 합니다만, 아무튼 그렇습니다.

Posted by 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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