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나. 글을 쓰지 않고 보낸 시간이 너무 길어서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할지 모르겠다. 일단 생각나는 것부터 시작해 볼까.
페르소나 4
스포일러가 있으니 접어 놓는다
일단 다 깬 건 이미 일주일도 더 전인데 미루고 미루다가 감상은 지금 적는다.
10점 만점에 9점 정도.모든 것이 매끄러운 것은 아니지만 엔딩을 보면서 이 정도로 만족스러웠던 게임은 오랜만인 듯. 일단은 범인이라고 되어있는 녀석이 너무 뻔해서(원래 흑막이라고 말하면 중요한 순간에 결정적 도움을 준 자를 제일 먼저 의심해 봐야 하는 법) 좀 맥이 빠지긴 했지만 사실 게임에서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니까 딱히 불만스럽지는 않고, 다만 스토리 텔링이 조금 더 세련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 조금 아쉽다.
주인공들이 정말 "고등학생다웠다"는 점도 꽤나 마음에 들었다. 게임같은 걸 하다보면 주인공이 설정상 고등학생이긴 한데 정신 상태는 다섯살 먹은 꼬꼬마거나 인생 다 산 노친네 내지는 득도한 스님인 경우가 허다해서 벙 찌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게임은 진짜 재미있게 잘 짜여진 청춘 드라마를 감상하는 느낌이었음.
페르소나라는 제목에 걸맞는 메인 스토리는 만족. 물론, 저 아다치의 포지셔닝이 조금 껄끄럽긴 한데, 위에 지적한 부분처럼 조금만 생각하면 꼭 중요한 부분에 나와서 결정적인 힌트를 주는 부분이나 이런 점이 수상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항상 이런 작품에서 아쉬운 점 중 하나가 뭔가 입체적일듯한 캐릭터가 꼭 마지막 가서 자폭하고 그냥 평범한 악역으로 전락해 버려서 말이지. (…) 그것 말고는 제목에 잘 어울리는 스토리이기도 했고, 주인공이 고등학생이라는 점도 있고 해서 꽤나 감정이입하기가 쉬웠다. 이게 타겟 연령대를 너무 내려 잡으면 『캐릭 캐릭 체인지』가 되고 그렇다고 주인공이 너무 노땅이면 딱 비웃음 사기 좋은 부분인데, 커뮤나 퀘스트 부분이랑 맞물려서 돌아가는 것이 꽤나 절묘했다.
전작과 비교해서 시스템의 발전이 눈에 띈다는 이야기도 많던데, 나야 전작을 해보질 않았지만, 그냥 이 게임만 놓고 봐도 전투나 던전 부분까지 세세하게 신경쓴 티가 역력하다. 스토리 모드도 매일 비슷한 선택지 고르는게 물릴때 쯤 되면 사건이 터져서 던전에 들어가고, 던전에서도 딱 재미있을 정도까지만 전투하고 스토리 모드로 넘어가고 할 수 있는 것도 장점. 괜히 심각하게 노가다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전투가 너무 쉬워서 흥미를 잃을 정도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여성 캐릭터의 취향을 말하라면 유키코를 꼽을까 리세를 꼽을까 좀 망설여지기는 한다. 스토리고 뭐고 하나도 모를 때는 치에가 제일 마음에 들었었는데, 스토리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다른 캐릭터들의 숨겨진 매력이 하나하나 드러나서 말이지. (…) 그렇다고 치에가 매력이 없다는 건 아닌데, 뭐랄까, 딱 게임 시작 전에 머릿속에서 생각했던 이미지 그대로에서 그 이상 보여주는 게 없어서 다른 캐릭터들에게 밀린달까. (…)
유키코는 게임 전에는 딱 오카미(女將)이라는 느낌이었는데 가끔 보여주는 그 똘끼(…)가 확 깨는데다가(예를 들면 그 나나코 퇴원하고 다 같이 케이크를 만들자고 나오토를 꼬시던 도중에 나온 "괜찮아, 아무도 만들어 본 적 없으니까"하는 대사라거나 말이지. 사실 그때야말로 "눈이 웃고 있지 않다"고 써야하는 부분 아닌가.), 커뮤니티 부분이(사실 이건 아닌 캐릭터가 없긴 한데) 캐릭터에 대해서 정말 감정이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어서 게임을 하면 할수록 좋아지는 캐릭터였다.
리세도 처음에는 그냥 아이돌 출신이라는 점에 작용하는 선입관이랄까, 그런 부분에다가 네비게이터 데뷔하는 부분과 주인공에게 갑자기 찰싹 달라붙는 부분이 좀 개연성이 없어서 별로다 싶었는데, 가면 갈수록 스토리의 비중은 높지 않은데도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가 되어버려서. (말이야 바른 말이지 예쁜 여자애가 찰싹 달라붙어서 애교를 떨어주는데 살살 녹지 않을 남자는 이 세상에 없...어?!) 다만 연인 아르카나의 페르소나가 없으면 커뮤니티 올리기가 빡센데다가 스토리도 딱 예상 가능한 전개라는 게 좀 마이너스. 그런데 그 애교는 진짜…. (…)
사실 플레이를 하다보면 주인공은 남자고 여자고 연령을 불문하고 다 철썩 가져다 붙여버리는 마성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싶은데, 예를 들면 절대간지 왼손은 절대 허리춤에서 떨어뜨리지 않는다거나. (…) 초반의 "그냥 내버려 두자"의 시크함이라거나 요스케 커뮤에서 보여주는 "사나이다움"(웃음)이 재미있어서 "아, 이 녀석 진짜 괜찮은 녀석이구나" 싶은 심정이 드니까, 딱 좋은 정도.
첫 바퀴를 도는데 너무 에너지를 소모해 버려서(클리어에 100시간 40분) 두 번째는 아마 일찍 돌아봤자 여름방학이나 되어서가 아닐까 싶은데, 아니, 그 전에 내가 2주차를 돌 수는 있을까 싶기도 하고. 시간 투자해서 하고 절대 후회는 안할 게임이나까 아직 안 해보신 분들은 되도록 필히 플레이 해보시길 추천드린다. 한글화도 꽤나 잘 된 편이라 플레이하기도 어렵지 않고, 공략집을 보지 않아도 즐기는 데 전혀 무리가 없고, 플레이도 사실 잔가지에 신경 안쓰고 줄거리만 따라가면 60시간 정도에 클리어가 가능하니까 방학동안 한번 플레이 해볼 용도로는 딱 제격. 다만, 번역에 흠이 있다면 페르소나 전서의 페르소나 소개가 발로 번역되어 있다는 것 정도. 다 잘 나가다가 마지막에 마무리가 흐트러진 것 같지만, 애초에 정품 발매해봤자 5만장도 안 팔리는 나라에서 이 정도라도 해서 나온게 어디냐. (…)
벼랑 위의 포뇨
스포일러는 없음.
감상문을 써야하는데, 이번 연휴 지나가기 전에 각 잡고 한번 쓰긴 쓸 듯. 심각하게 고민하면 지는 영화이고, 타겟이 딱 초등학교 2-3학년 내외인 것이 티나기도 하는데, 쓸데없는 탐구심을 버리면 어른들이 보기에도 나쁘지 않다. 아니, 사실 어느 쪽이냐고 하면, 어린이에게는 꼭 보여줘야할 영화고, 어른들도 어지간 하면 이런 작품 정도는 놓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함. 미야자키의 팬이 아니라도, 보고 나면 확실히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작품.
확실히 내가 80년대 중반 이후 출생자에 일본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라 미야자키 옹의 작품을 실시간으로 본 것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정도라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미야자키 옹의 철학은 그저 "어쨌든 전진한다면 희망은 있다" 정도라는 걸 캡처하니까 개안을 한 것 같이 모든 것이 환하다고나 할까. 아니 그걸 이제와서 깨달은 나도 팬 자격이 없다고 욕 먹어도 싸지만. 어쨌든, 잔가지야 어떻게 되든, 결과적으로 모든 게 잘 되었잖아?
일단 보면서 흐뭇했던 것이 악역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 정말,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서 악역을 떠맡았다는 것도 아니고, 정말 말 그대로 악역이 "없다". 이야기에서 앤태거니스트라고 할만한 사람이라고 해봐야 후지모토인데, 이 아저씨도 정말 "아버지" 그 자체라 진짜 애들이야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절대 악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이 아저씨한테 감정이입할 부분도 많고.
마지막 이 작품이 아이들 대상이라는 걸 확실히 보여주려는 듯 간결하게 비중이고 뭐고 아무 고려 없이 50음도 순으로 스태프를 주르륵 써놓고 1분만에 끝나버리는 크레딧도 정말 좋았다. 가히 충격적이라 할 만 한데, 거장이 나이가 들어서 모든 걸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되면 얼마나 무서워 질 수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달까. 확실히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본격적인 감상 없이 잔소리만 늘어놓는 것도 그렇고, 어차피 이제 거의 내려간 영화에 대해 구구 절절 써 봐야 관객을 늘릴 수도 없으니까 이만 줄인다.
그건 그렇고 리사(엄마)가 진짜 매력이 넘친다. 위에서 언급한 페르소나 4의 여성 캐릭터들이 그냥 "매력있다"는 정도라면, 이쪽은 진짜 "하트에 직격". 이런 여자가 내 곁에 있어준다면 진짜 인생의 승리자가 부럽지 않…은게 아니고 그게 바로 인생의 승리자지 뭐야.
시사
지난 학기에 쓰기도 했는데, 난 좀 비겁하기 때문에, 이런 난세에는 일단 스스로 살아남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길게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고, 그냥 윗대가리가 미치니까 다른 모든 사람들도 (방향이야 다들 제각각이지만) 미쳐가는구나 싶은 생각이 자꾸 들기는 한다.
정치력도 꽝이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부지런하기만 한 병신이 윗자리에 있으니까 정말 고달프구나. 저거 정말 저러다가 임기 다 못채우지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요즘.
아, 새삼스럽지만 위 두 문단에는 주어가 없다. 凸
이글루스
병신들이 차례로 열폭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슬슬 익숙해졌고, 오늘은 또 어디서 누가 열폭하나 구경하는 재미로 요즘 이글루스를 자주 들락거리는데, 그냥 어설픈 병신들이야 놔둬도 무해하지만, 진짜 문제는 역시 소위 "논객"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07년 대선을 전후해서는 자칭 진보들이 차례차례 밑천을 드러내면서 자멸하더니 작년에는 자칭 보수들이 괜히 나대다가 차례차례 자폭하고, 요즘은 그냥 너도 나도 같이 아웅다웅 하다가 다 같이 공멸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정해지는 듯.
물론 옆에서 불구경만 하고 있는 나도 똑같이 찌질한 건 마찬가지인데, 그냥 이렇게 반문하련다. "내 눈에 들보가 들어있다고 그게 남에 몸에 묻은 겨를 지적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니"라고. 일단 내가 가진 흠결이 상대방의 흠결과 다른 종류라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이고, 사실은 같아도 인정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하는 게 맞긴 한데 인지상정이 그렇지는 않다는 점이랑, 남이 내 잘못을 지적하는 건 어떻게 하느냐도 물론 중요한 요소인데 내가 항상 말하지만 그렇다고 "너도 나도 쌤쌤"하는 건 물타기라는 점은, 그 놈의 "오해"를 막기 위해 항상 덧붙이는 상용구라는 것. 뭐, 이 블로그 봐 오신 분들이면 충분이 짐작하고 계셨겠지만.
아무튼 산왕님도 "좌익 사범"의 참고인으로 불려가는 마당에 꼬꼬마 찌질이 한명이 더 이야기 해봐야 좋을 것 하나 없으니 사람 기분도 나빠지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 내일 안양에 가야해서 오늘은 이만 자야지.
Posted by 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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