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단상

사실 다른 분들 블로그에 달아 놓은 댓글에서 대부분 이야기 한 것입니다만, 그래도 자신의 블로그에 저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으니 적어 보죠.

사실 제가 뭐 깊은 정치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정치적인 실존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하고 살아온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나이브하게나마 우리나라의 비전이나 뭐 그런 것들에 대해서 조금쯤은 생각해 보았다고 생각하는데, 아니 이런 이야기나 적고 있을 게 아니긴 하네요, 아무튼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Let's just pretend to understand all those things. 완전하지 않은 생각을 자책하며 혼자 자괴하는 것 보다는 일단 현실에 부딪혀 보는 게 필요할 때도 있는 거니까요.

아무튼, 일단 예상했던 대로 한나라당이 승리를 했는데, 153석이면 상당히 미묘한 수치입니다. 과반은 과반인데, 그렇다고 뭐든지 마음대로 하기도 좀 애매한 게, 그중에 30석 정도는 친박계열이란 말이죠. 게다가 이재오 같이 친 MB계열의 중진이 전부 잘려나갔으니 대통령이 당을 장악하기도 한층 힘들어졌습니다. 박근혜는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한나라당을 지켜서 명분을 쌓으면서도 자신들의 측근을 고스란히 지켜냈고 친박연대가 영남에서 의외의 선전을 하면서 실리도 쌓았습니다. 당장이야 한나라당이 복당 시켜줄 리가 없지만, 두고 보세요, 저 사람들 대부분은 1~2년 내로 한나라당에 돌아가 있든지, 아니면 적어도 한나라당 당적만 없을 뿐인 사람 정도의 포지션에 가 있을 테니까요. 결론적으로 박근혜 씨는, MB가 삽질 하는 걸 적절히 견제만 해 준다면 다음 대선을 예약할 수 있는 입지를 탄탄히 했습니다. 작년부터 예상은 했지만, 확실히 박근혜가 정치력은 있는 것 같아요.

자유선진당은 대전·충남에서 예상 밖에 선전을 거두었습니다. 사실 충청 홀대론이 먹혀들었고 소지역주의가 강하게 발흥한 건 대전 사람으로서 상당히 부끄러운 일이긴 합니다만, 뭐 이건 이 바닥만 그런 게 아니니 조금 자위를 해볼 여지라도 있네요.

민주당은 패배했지만 참패까지는 아니고, 호남에서 변함없는 지지를 확인한데다가 영남에서도 두석을 가져가는 기염을 토하면서 아직 죽지는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당분간 큰 힘을 쓸 수는 없겠네요. 내후년 보궐선거 할 때까지 착실히 힘을 길러야하겠습니다. 그리고 지못미 손학규. -_- 사실 이 사람은 황우석 사건 때 괜히 나대서 제가 좀 안 좋게 보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정동영보다는 나은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주사파는 지금까지 남들이 착실하게 쌓아 준 이미지를 면피용으로 활용해 선방했습니다. 그 내홍을 겪고도 5석이면 훌륭합니다. 하지만 몇 년이나 더 가나 내가 지켜보겠습니다. -_-

진보신당은 결과적으로 강남 좌파, 살롱 좌파, 뭐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소위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대거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해 줬는데도 병신같이 지역구에 밀착한 선거 전략이 아닌 소수자 인권 보호 뭐 이따위 논리를 지역구에서 들고 나왔다가 노회찬까지 홍막장씨에게 밟히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그래도 정당 해산 안 당하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네요. 혹시 해산당한 사회당 사람들이 그쪽으로 가면 박해하지 마시고, 왜 선거에서 발렸나 대가리 부여잡고 반성 좀 하시길 바랍니다. 뭐 그래도 창당 3주 만에 선거했는데 해산 안 당했으니 승리라는 딸딸이만 친다고 지금 될 일이 아니에요. 솔직히 이번에 아무개 씨 블로그 올라오는 글 보면서 아Q씨의 정신승리가 생각나서 좀 씁쓸했습니다. 이해가 아니 가는 건 아닌데 옆에서 보기 거식하더라구요. 아무튼 제가 표는 찍지 않았지만 그래도 진보신당이 선전해야 우리나라가 잘 된다는 생각 정도는 가지고 있었는데 쵸큼 아쉽게 되었지만 비 지지자 입장에서 볼 때 자업자득입니다. 솔직히 선거전 내내 신문이나 블로그에서 전해오는 소식만 듣고도 참 살짝 어긋난 유세구나 생각은 했는데 아무튼 그러네요.

기독당이랑 통일교당이 원내진출 못 한건 축하할 만한데, 기독당 정당 지지율이 진보신당보다 높다죠. 솔직히 지금 저는 굉장히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진짜 이대로 가면 다음 총선에서는 두세 석쯤 당선자가 나올지도 모르고, 이러다가 기독당이 한국의 공명당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아 진짜 그건 악몽입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것만은 제발 막아줬으면 좋겠습니다. -_- 종교가 현실권력에 손을 대면 그건 진짜 끝장이라구요.

그래도 결론적으로는 170석이 위험하니 뭐니 했는데 이 수치는 친박연대까지 더해야 겨우 나오게 되었다는 점, 민주당이 80석 정도로 의외의 선전을 보여주었다는 점 정도르 이번 선거는 만족하고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국개론을 넘어서 20대 개새끼 이론도 슬슬 나오고 있던데, 물론 투표 안 한건 욕좀 먹어도 싸지만, 그게 개새끼니 뭐니 하는 정도까지 가는 건 분명히 오버죠. 우리나라 현대사를 보아왔을 때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은 나서야 할 때는 나서는 사람들이니까요. -_- 그런데 자기 포지션 파악 못하고 투표하러 가지도 않고 술이나 퍼마시면서 정치판 욕하는 부류들은 자기가 한 욕 그대로 돌려받아도 할 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픈소스도 마찬가지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참여하지 않고 링 바깥에서 훈수만 두는 선수는 좀 맞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담을 조금 하자면, 노원의 홍막장씨 당선도 깨는 뉴스였는데 인터뷰에서 노동 귀족과 서민의 아들이 대결했다느니 어쨌다느니 했다죠? 아 이건 진짜 뒷목잡고 쓰러져야 될 뉴스인데, 헛웃음만 나오네요. 그리고 삼척의 최주물럭 의원도 죽지 않았음을 과시했고요, 전여오크 여사랑 인제피닉스 대인도 당선되는 꼴을 보니 진짜 기가 찹니다. -_-

Posted by 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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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api 2008/04/11 00:24 # M/D Reply Permalink

    일단 진보신당의 향후 앞날을 고민하는 당원들(여기서 언급되는 지식인들 포함)은 별로 딸딸이 치고 있는 것 같지 않던데. 특히 노회찬의 지역구 유세에 있어서 전략적으로 잘못된 노선을 택하였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반성하고 있는 것(가령, 노정태라든가)도 그들 자신이고. . . 뭐 내가 진보신당 당원도 아니고 역성들며 편들 일은 아니지만 휘연의 이번 진보신당 비판은 다소 감정이 치우친 듯한 느낌이다. 지지정당이든 아니든 기대가 있으니 실망하는 거겠지만, 그들 내부의 자성론이나 향후 방향 고민에 대해 지나치게 냉소적인 것 같달까. 그리고 일단 무엇보다도. . . 1) 한국사회당은 해산"당"한 게 아니고, 2) 진보신당이 2% 득표 못 했더라도 역시 해산"당"하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 겨우 이번에 국회 좀 들어가 보자고 뛰쳐나온 것도 아니고 (그들의 지지자들도 아무도 이걸 기대하지 않아). 그리고. . . 내가 마음이 불편한 건 "해산당한" "대가리 부여잡고" "딸딸이"도 그렇지만 "살롱 좌파"랄까. 여기에 대해서 적자면 말이 길어질테고, 나도 아프고 울적하고 해서 지금 적기 애매한 상태이니 (게다가 블로그를 하는 것도 아니고 말야) 기회가 되면 이야기해보도록 하지.

    1. 휘연 2008/04/11 15:45 # M/D Permalink

      예, 그나마 진보신당 쪽에 희망을 버리지 않는 건 제가 이런 말 안해도 알아서들 반성하시는 것 같아서지요. 일부러 조금 냉소적으로 쓰려고 했어요. 개념 컨셉을 잡고 글을 쓰려고 하니까 진도가 안 나가길래 차라리 욕먹고 냉소적으로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말이지요. 그것도 그거고, 본인이 보지도 못하는 데서 뒷다마 까는 것 같아서 좀 미안하지만 한윤형님이 술먹고 자기 블로그에 올린 글이 너무 안쓰러워서 조금 울컥해 버렸습니다. -_- 해산 당했다는 건 좀 막나간 발언이 맞고요, 그래도 결과적으로 정당 등록 취소에 대한 이야기였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살롱좌파에 대해서는 저도 할 말이 좀 있는데, 블로그에 글까지 써서 올리기는 조금 논리도, 근거도 빈약하고 나중에 만나면 이야기해 봤으면 좋겠네요. 왜 노정태를 위시한 비판세력이 일찌감치 나왔는데도 노회찬이 그런 방법을 고수했는지, 왜 거성이라고 불릴만한 지식인들이 잔뜩 나섰는데도 진보신당이 실패했는지 조금 생각을 더 해 보아야겠지만, 그래도 그들이 지식인들이 흔히 빠지는 실수인 "너무 많은 변수에 대한 계산"과 "PC함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정작 자신을 찍어줄 유권자를 설득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이고, 그 부분에 있어서는 유권자와 유리되어 뜬구름만 잡았다고 비판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아 보여요. 민도가 어쩌니 수준이 어쩌니 하기 전에, 적어도 선거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민도가 어쨌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고, 사실 그들이 떠드는 것 만큼 우리나라의 민도가 낮은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시오노 여사의 에세이 중에서 "유럽에서 자유당이 몰락한 이유"에 대해 적은 글이 있었는데, 요즘은 자꾸 그 글이 떠오르더라구요.

      그리고, 아프고 울적할 때는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족욕을 하면 좀 나아질 거예요. :]

  2. capi 2008/04/13 19:17 # M/D Reply Permalink

    아. 근데 한윤형이 술 먹고 뭔 글을 올렸다는 거야? ㅋㅋ 술 마시러 가기 전/숙취에서 풀려난 후에 쓴 글 말곤 못찾겠던데. . . 이건 뭐 중요한 얘긴 아니고. 난 박각 글 보고 울었다는 대목에선 좀 안쓰럽긴 하더라고. . .

    요샌 심상정은 전략이 훌륭했으나 통합이 무산되어 망했다/노회찬은 선거 전략이 개판이었다로 대충 귀결되는 분위기인 듯도. . .

    1. 휘연 2008/04/14 13:59 # M/D Permalink

      제가 제일 아니다 싶었던 건 그 "이겼다" 제하의 글. -_- 그거 보고서 진짜 "아니 이 사람아 아무리 그래도 이런식이면 곤란하다고" 라고 댓글 달아주고 싶었는데 꾹 눌러 참았습니다. -_- 뭐 지지자도 아닌 제가 이런 말 해봐야 도움이 될 리도 없고. 심상정 선본도, 좀 냉소적으로 바라보자면 통합 무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고로 전략이 훌륭했다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물론 동영상 보고 이게 정견발표인지 아니면 지역구 유세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 노회찬의 어이없는 연설--로 대표되는 그 선본의 전략보다는 훨씬 나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나저나 진짜 창당 6년(청년당 시절 제외하고)에 대선도 두번이나 나온 사회당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관심 1g도 안 가져주는 것 같아서 좀 슬프네요. 꼴통 PD네 독일 직수입 사민주의 어쩌구 비판받아도 그 의기(?)만은 높이 사줄만 했는데 말이죠. 진보신당하고 합치려나 좀 두고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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